-봄바람; 그녀 편-

 

 

 

 

 

 

과거.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벚꽃이 피는 계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날의 봄.

 

 

 

 

 

 

 

2002년 3월.

 

졸업을 앞둔 D-day 1일 전,

오랜만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밖을 나섰다.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출발했다.

도착지점에 다다를 무렵 황급히 벨을 누르고 정거장에 내렸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그를 위해 미안함에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갑자기 시야가 가리워진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

유난히도 고운 얼굴선. 가지런한 눈썹과 하얀 치아. 얇은 듯 두꺼운 입술.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한 사람.

누구지? 동그란 눈을 뜨며 궁금증을 자아내니 소개가 늦었다며 악수를 내미려는데 옆에서 제지한다. 그리고 엄청 괴로운 표정을 지은 채 예쁘게 포장된 조그만 상자를 건네준다.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보여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상자를 열어보니 기념일과 생일 때 사주었던 시계와 향수가 들어있다. 이걸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고개를 들어 물어보던 찰나, 그가 먼저 말한다.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지 고민했어... 너를 만나면서 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한 채 웃으면서 대했던 것에 대해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닌 척 했지만 사실 많이 괴로웠어. 네가 볼 땐 별 것도 아닌 일로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중요했고 그렇기에 더욱 더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쩌면 난 이 날을 기다려왔을 지도 몰라. 그 동안 너로 인해 많은 걸 깨닫고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더 이상 속이고 싶지 않아......]

 

이후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애써 흐르는 눈물을 참고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커플링만 만지작거린다.

그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나와 같을까?

나와.......

 

자신보다 더 행복하게 살으라는 말을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그들은 다정하게 손을 잡으며 걸어간다.

한 번쯤 돌아봐주기를 기대하며 하염없이 뒷모습만 바라본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날.

 

그는 떠났다.

 

아무런 미련없이.